여행지 음식에서 일상 식재료가 된 흑돼지

흑돼지라고 하면 보통 제주도에서 두툼하게 구워 먹는 삼겹살이 먼저 떠오릅니다. 저 역시 흑돼지를 평소 집에서 요리하는 고기보다는 여행지에서 맛보는 음식에 가깝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흑돼지는 제주가 아니라 산청에서 먹은 삼겹살이었습니다. 이후 동네 매장에서 가끔 사 먹다가 판매가 중단되어 한동안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평일에 생활하는 내륙 지역의 로컬푸드 매장에서 흑돼지고기를 다시 만났습니다. 삼겹살뿐 아니라 잡채용 고기와 등갈비, 앞다리살까지 판매하고 있어 평소 만들던 음식에도 하나씩 사용해 보게 됐습니다.

산청에서 돌에 구워 먹은 흑돼지

예전에 지리산 근처 지역으로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함께 간 분이 “산청에 왔으니 흑돼지고기를 맛봐야 한다”며 삼겹살을 사 왔고, 밖에서 돌에 구워 함께 먹었습니다.

그때 먹은 흑돼지 삼겹살은 제가 평소 먹던 돼지고기보다 식감이 훨씬 쫀득했습니다. 살코기는 질기지 않으면서 씹는 맛이 있었고, 지방과 껍질에도 탄력이 느껴졌습니다.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서 나중에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뒤 제가 사는 동네의 농협 축산물 판매장에서도 흑돼지고기를 판매했습니다. 산청에서 먹었던 맛이 생각나 가끔 구입해 먹었습니다.

흑돼지가 일반 돼지고기보다 조금 비쌀 것이라는 생각은 원래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가격도 조금 더 높았지만, 쫀득한 식감과 구수한 맛이 좋아 돈을 약간 더 주고서라도 구입했습니다.

그러다 동네 매장에서 흑돼지고기를 더 이상 판매하지 않으면서 한동안 사 먹지 못했습니다.

제주와 지리산권의 흑돼지

흑돼지로 가장 널리 알려진 지역은 제주입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제주 고유 유전자원인 제주재래흑돼지를 바탕으로 ‘난축맛돈’이라는 품종을 개발했으며, 2025년 기준 난축맛돈 사육 농가 14곳 가운데 12곳이 제주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내륙에서는 지리산권의 흑돼지 사육 규모가 큽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202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남 지역에서는 지리산권을 중심으로 흑돼지 약 5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 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입니다. 당시 전국 흑돼지 사육 마릿수는 약 19만 마리로 소개됐습니다.

제가 산청에 갔을 때 함께 간 분이 흑돼지를 꼭 먹어 봐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그 지역의 식문화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흑돼지로 알려진 제주나 지리산권을 여행한다면, 그 지역에서 판매하는 흑돼지고기를 한 번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흑돼지’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돼지가 모두 한 가지 품종은 아닙니다. 재래돼지뿐 아니라 재래돼지의 육질을 살리고 성장성과 번식 능력을 보완해 개발한 우리흑돈과 난축맛돈 같은 품종도 있습니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다시 만나다

평일에 생활하는 내륙 지역에서는 흑돼지고기를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일부 정육점에는 ‘지리산 흑돼지’라고 적힌 간판도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구입한 곳은 로컬푸드 매장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삼겹살과 목살뿐 아니라 잡채용으로 가늘게 썬 고기, 등갈비와 앞다리살까지 진열돼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흑돼지를 구입했을 때는 주로 삼겹살이나 목살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일반 돼지고기처럼 음식의 용도와 부위에 따라 골라 살 수 있었습니다.

흑돼지를 구이로만 먹는 고기가 아니라 평소 만드는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일반 돼지와 흑돼지의 사육 차이

흑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가격이 조금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산청에서 먹었던 쫀득한 식감과 구수한 맛이 기억에 남아 있어, 동네 매장에서 판매할 때는 돈을 조금 더 주고도 가끔 구입했습니다.

흑돼지와 우리가 평소 먹는 일반 돼지고기용 돼지는 사육 과정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 국립축산과학원의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흑돼지 품종인 ‘우리흑돈’과 한국재래돼지, 일반 비육돈의 사육 특성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일반 비육돈은 약 180일에 110kg 정도로 출하하며, 한 번에 낳는 새끼 수는 11∼12마리로 소개돼 있습니다. 우리흑돈은 약 183일에 110kg 정도로 출하하고 새끼 수는 9∼10마리로, 성장 기간은 일반 비육돈과 큰 차이가 없지만 새끼 수는 조금 적습니다.

반면 한국재래돼지는 약 230일을 키워도 출하 체중이 80kg 정도이고, 한 번에 낳는 새끼 수도 6∼8마리입니다. 일반 비육돈이나 성장성을 개선한 우리흑돈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생산량도 적은 편입니다.

이 자료를 보니 흑돼지라고 해서 모두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수 재래돼지는 일반 비육돈보다 성장성과 번식 능력이 낮지만, 우리흑돈처럼 재래돼지의 육질을 살리면서 성장성을 개선한 흑돼지도 있습니다.

제가 구입한 지리산 흑돼지의 정확한 품종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해당 제품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 먹는 일반 돼지고기용 돼지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량돼 왔고, 흑돼지는 품종과 계통에 따라 성장 속도와 새끼 수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요리에 흑돼지를 써보니

로컬푸드 매장에서 다양한 부위를 판매하니, 평소 사용하던 일반 돼지고기를 흑돼지고기로 바꿔 요리해 봤습니다.

잡채용 고기

먼저 잡채용으로 가늘게 썬 흑돼지고기를 구입했습니다.

평소 사용했던 일반 돼지고기는 볶거나 당면과 섞는 과정에서 잘게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먹을 때 고기가 다소 퍽퍽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흑돼지 잡채용 고기는 가늘게 썰려 있어도 볶은 뒤 모양이 비교적 잘 유지됐습니다. 당면과 채소를 함께 섞어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고, 씹었을 때 탄력 있는 식감이 남았습니다.

잡채 안에서도 고기의 씹는 맛이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등갈비찜

등갈비는 양념을 넣어 찜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반 등갈비보다 고기가 지나치게 부드럽게 풀어지지 않고 쫄깃한 식감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양념이 배어든 뒤에도 고기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아 씹는 맛이 좋았습니다.

제가 흑돼지에서 좋아했던 쫀득한 식감이 등갈비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앞다리살 김치찌개와 불고기

앞다리살은 김치찌개와 양념불고기에 사용했습니다.

김치찌개에 넣었을 때는 오래 끓여도 고기가 쉽게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구입한 흑돼지 앞다리살은 살코기의 식감이 탄탄하면서도 지나치게 퍽퍽하지 않았습니다.

얇게 썬 앞다리살로 불고기를 만들었을 때도 고기의 씹는 맛이 남았습니다. 기름기가 있어도 입안에 느끼함이 오래 남는 느낌은 비교적 적었습니다.

삼겹살

삼겹살은 두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산청에서 돌에 구워 먹었을 때 기억했던 쫀득한 식감과 구수한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껍질이 붙은 부분은 지방과 껍질의 탄력이 함께 느껴져 제가 좋아하는 흑돼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맛과 식감은 제가 구입한 제품과 조리 경험을 기준으로 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껍질에서 본 검은 흔적

껍질이 붙은 흑돼지 삼겹살을 구입했을 때 짧은 검은 털이나 털뿌리처럼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고기에 검은 점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 조금 낯설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껍질에 남아 있는 털 흔적이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직접 제거한 뒤 조리했습니다.

모든 제품에서 같은 정도로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껍질을 어떻게 손질했는지에 따라 거의 보이지 않는 고기도 있었고, 짧은 털이 남아 있는 고기도 있었습니다.

흑돼지라는 이름 때문에 검은 흔적이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털이 많이 남아 있거나 고기의 색과 냄새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면 판매처에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소비기한을 다시 확인한 계기

한 번은 로컬푸드 매장에서 고기를 고르는데 한 팩의 고기색이 다른 제품보다 선명하지 않게 보였습니다.

포장지를 확인해 보니 소비기한이 구입 당일까지였습니다. 그날 바로 집에서 조리한다면 상황이 다를 수 있었지만, 저는 고기를 사서 약 3시간을 이동해 대도시 집까지 가져가야 했습니다. 도착한 날 바로 조리할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해당 고기가 상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이동 시간과 실제로 요리할 날짜를 생각하면 소비기한에 여유가 있는 제품이 더 적절했습니다.

매장에 사정을 설명하고 소비기한이 조금 더 남은 제품으로 교환했습니다. 그 뒤부터는 고기의 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기한과 포장 상태, 실제로 요리할 날짜를 함께 확인합니다.

세 시간 이동에는 보냉백이 기본

내륙 지역에서 구입한 고기를 대도시 집까지 가져가야 하므로 보냉백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이동에는 약 3시간이 걸립니다. 시외버스를 탄 뒤에도 지하철로 다시 이동해야 합니다. 특히 더운 날에는 고기가 들어 있는 가방이 버스 짐칸의 열기를 견뎌야 하므로 그냥 가방에 넣어 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작은 보냉백 안에 흑돼지고기를 넣고, 500mL 생수병을 미리 얼려 함께 넣습니다. 별도의 냉매를 준비하지 않아도 얼린 생수병을 보냉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녹은 뒤에는 물로 마실 수도 있어 편리합니다.

보냉백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동 시간을 길게 잡지는 않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다른 짐을 정리하기 전에 고기부터 꺼내 냉장실이나 냉동실에 넣습니다.

저에게 보냉백과 얼린 생수병은 특별한 방법이라기보다, 더운 버스 짐칸과 지하철 이동을 거쳐 고기를 가져가기 위한 기본 준비입니다.

만들 음식에 맞춰 부위를 고르게 됐다

처음 흑돼지를 기억하게 만든 음식은 돌에 구운 삼겹살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흑돼지는 구워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로컬푸드 매장에서 잡채용 고기와 등갈비, 앞다리살을 구입해 평소 요리에 사용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흑돼지고기를 살 때 무조건 삼겹살부터 찾지 않습니다. 잡채를 만들 때는 가늘게 썬 고기를, 김치찌개나 불고기에는 앞다리살을, 찜에는 등갈비를 고릅니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탄력 있는 식감과 구수한 맛을 얻을 수 있어 가끔 흑돼지를 선택합니다.

흑돼지로 알려진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그곳에서 먼저 맛을 보고, 가까운 매장에서 여러 부위를 판매한다면 평소 만들던 음식에 한 번 사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에게 흑돼지는 이제 여행지에서 한 번 먹고 끝나는 별미가 아닙니다. 만들 음식을 먼저 생각한 뒤 그에 맞는 부위를 고르는 일상적인 식재료가 됐습니다.

참고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한국재래돼지의 사육 특성 관련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국내 흑돼지 사육 현황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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